
고(故) 조성우 선생 1주기 추도식이 故 조성우 선생 1주기 추도식 준비위원회(자주통일평화연대, 전국시국회의,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의 주최로 "조성우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민주와 평화의 새 시대를 열자"라는 주제로 2026년 1월 18일(일) 오전 11시 마석 모란공원 묘소에서 열렸다.
고(故) 조성우 선생 1주기 추도식 준비위원회는 “선생의 삶은 민주주의와 평화, 통일을 향한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 그 자체”라며, “이번 추도식이 선생의 정신을 계승해 민주와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다짐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200분 이상이 오셔서 '통일민주운동의 선구자 평화운동 씨앗을 뿌리신 조성우 대표님을 추모'하며 그의 발자취와 남기신 뜻을 되새겼다.
이연희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대표의 사회로 추모식이 시작됐다. 제일 먼저 고 조성우 선생님과 통일·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모든 이들을 위한 묵념 시간을 가졌고, 이어 선생의 생애와 주요활동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다음으로 고인을 생각하면서 이홍정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 이용길 전국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이해학 목사,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대표의 추모사가 있었다.
추모사에 이어 고(故)조성우 선생의 생전 육성 연설과 임종철 건상사회를 위한 약사회 초대 회장의 시 낭송이 있었다. 이어 유가족 맏사위 황순식 전국시국회의 공동 대외협력위원장이 유가족을 대표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추모식 오신 분들 모두 다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추모 헌화와 배례를 하고 나서 마쳤다.
이연희 사회자는 "고(故) 조성우 선생의 정신을 영원히 우리 안에 간직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민주와 평화의 길에 흔들림없이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사회자 이연희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대표 ▶사진출처: 2026.1.18(일) 정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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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2026.1.18(일) 정연진

추모사 이해학 목사 ▶사진출처: 2026.1.18(일) 정연진

사회자 이연희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대표 ▶사진출처: 2026.1.18(일) 정연진

▶사진출처: 2026.1.18(일) 정연진

▶사진출처: 2026.1.18(일) 조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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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2026.1.18(일) 조형주

▶사진출처: 2026.1.18(일) 조형주

▶사진출처: 2026.1.18(일) 조형주

▶사진출처: 2026.1.18(일) 장원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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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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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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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추모사 이해학 목사 ▶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추모사 이용길 전국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황순식 맏사위 유가족 대표 인사▶사진출처: 2026.1.18(일) 황순식

추 모 사
전국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이용길
우리는 1년 전 12.3내란 와중에 존경하는 조성우 선생님을 황망하게 떠나보내드리고 이제 다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조성우 대표님!
궁금해하실 몇가지 보고를 드립니다.
먼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은 사형이 구형되었고 나머지 여러 재판이 진행중입니다. 주요 종사자들도 중형이 구형되는 등 재판이 진행중이거나 수사중입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2차특검도 예정되어있으니 내란세력은 청산되고 역사정의는 실현될 것입니다. “단결한 민중은 실패하지 않는다!”던 대표님의 외침대로 민주시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승리했다는 보고를 드릴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고문님들과 대표님을 중심으로 윤석열 퇴진투쟁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전국비상시국회의는 평가와 조직발전 논의 끝에 전국시국회의로 힘차게 출발하였습니다. 재야운동의 전통을 계승하고 당면한 도전에 당당하게 맞서며 미래세대의 전망을 열어가기 위하여 책임을 다하는 조직으로 전진할 것입니다. 대표님의 빈자리를 메울 수는 없지만 모두가 한마음으로 단결하여 실패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 대표님께서 세우신 여러 조직과 단체들의 깃발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과 인연으로 대표님과 함께 했던 동지들과 후배들도 있습니다. 고단하고 고독했던 사나이의 곁을 지켰던 사모님과 가족들도 계십니다. 우리는 이제 대표님의 가르침을 대표님의 삶과 투쟁에서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려합니다. 무었이 옳고 그른지 모르겠거나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거나 때를 몰라 망설일 때에는 대표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세월의 곳곳에 서려있는 지혜와 용기를 배워서 등대로 삼을 것입니다. 대표님의 삶과 투쟁의 여정을 따라서 ‘조성우’처럼 살아가기 위해 애쓸 것입니다.
조성우 선생님!
역사는 “조국이 통일되기 전에는 면장노릇도 않겠다”고 호기롭게 토로하시던 선생을 통일운동의 선구자이고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기록할 것입니다. 선생을 고문하고 징역살이 시키고 한겨울 샛강 찬바람에 병든 몸을 의료대란으로 제대로된 치료조차 인색하였던 야속한 이놈의 세상은 이제야 큰 빚을 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선생은 언제나 너른 마당이었고 커다란 언덕인줄 알았던 우리들의 형님이고 선배님이고 동지이셨습니다. 시대의 풍운아요 혁명가이셨던 조성우 선생을 잃은 우리들은 아직도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성우 형님!
윤석열의 12.3내란으로 [비상행동]이 막 깃발을 올리고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하던 때에 형은 쓰러지셨고 대신하여 상임공동의장을 맡았습니다. 청천벽력처럼 형을 눈물로 보내드리고 목숨을 걸어야했던 순간들의 두려움을 조성우 형을 원망하며 의지하며 광장을 무겁게 끝까지 지켰습니다.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에 매진하면서도 통일운동과 민중운동의 한 길을 큰 걸음으로 앞장서 나가시는 형은 나의 큰바위 얼굴이셨습니다. 역사의 언덕위에서 투쟁의 한 길을 거침없이 온몸으로 헤쳐나가시는 형에 대한 믿음으로 이번에도 묻지않고 따라나섰습니다. 고향을 지키려던 아우를 광장으로 불러내신 형님! 형님은 이제 아무 말도 없으십니다. 형님!
조성우 선생님, 조성우 대표님, 조성우 형님, 조성우 동지!
삼가 명복을 빕니다!
추모사
이홍정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
조성우 선생님, 민주와 통일을 하나로 결합하며 하나된 겨레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구부러진 한길'을 걸어가신 선생님께서 생명의 바다로 흘러 가신지 한 해가 지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미완의 해방, 분단 80년의 길목에서 내란 수괴 윤석열이 비상계엄과 내란 및 외환지로 그려낸 대한민국의 '냉전의 얼굴', '전쟁정치의 얼굴' 속에서 한반도를 옥죄이는 식민분단냉전세력의 거대한 구조악의 얼굴을 마주하시고, 사즉생의 불굴의 용기로 떨쳐 일어나셔서, 다시 민주와 통일을 향한 '한길'의 투쟁을 시작하셨습니다.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우리는 선생님께 부재하신 지난 일년 동안, 한반도에 깊이 뿌리내린 식민분단 냉정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투쟁의 생명망을 짜시는 선생님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선생님께서 품어 연결하신 다양한 인연의 물줄기들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께서 풀어내신 매듭들이 민주와 평화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생명의 망을 잇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식민분단냉전체제가 재생산해 온 반민주, 반평화, 반생명의 질곡을 넘어 반공독재, 군사독재, 자본독재, 검찰냉전독재의 어둠을 밝히며, '구부러진 한길'을 걸어가신 시대의 파수꾼이신 선생님께서 끝내 그리기시를 원하셨던 빛의 얼굴은 하나된 겨레의 얼굴이었습니다.
오늘 미중 패권전쟁 속에서 한미일군사협력체제가 동아시아에 드리운 신 냉전의 그림자는 한미동맹현대화를 통해 그 반평화적 실체를 드러내명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동족개념의 시간대를 지나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한 채 하나된 겨레의 얼굴을 형해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님이 남기신 기억의 유산에 부끄럽지 않게 그 어떤 식민분단냉전세력도 짓밟을 수 없는 민중적 민족의 양심에 새겨진 평화주권과 자주통일의 실현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희망으로, '하나된 겨레'의 얼굴을 완성하기 위한 결사적 평화주권행동을 전개하면서, 자주평화통일의 '한길'위에 시대의 파수꾼이 되어 정진하겠습니다.
조성우 선생님, 이제 우리가 탐욕의 제국, 불량국가 미국에 의해 구축된 약탈경제·전쟁동맹체제를 해체하고, '하나된 겨레'를 향한 대장정의 '한길'을 이어갈 때 거기에 '순정의 파탄'을 지닌 소년이 되어 한걸음에 달려오시기 바랍니다.
빼앗긴 들에 봄을 부르는 노래처럼, 동토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감춰진 봄의 씨앗과 향기처럼, 이 땅의 민중해방사에 깃드신 선생님, 이제 역사의 깊은 강이 되어 흐르시며,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의 목마름을 적셔주십시오.
부디 생명의 바다에서 깊은 안식을 누리소서.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추모사 조성우동지 증언서 (1주기추모에)
이해학 목사님
나는 단군이다!
너도 단군이다!
우리는 모두 단군이다!
이 선언은 조성우 동지가 2003년 평양 개천절 행사에서 던진, 그야말로 폭탄 같은 선언이었습니다.
이후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북한 관리들이 너무도 당황하여 달려와 입을 막으려다 끝내 그러지 못했다고 합니다.
1인 영웅 체제가 지배하는 곳에서 “내가 단군이다”라고 외친 조성우의 배짱은 그의 삶 곳곳에서 일관되게 드러났습니다.
평양 행사에 단골처럼 불려 다니던 남쪽 대표들이 마땅치 않은 행사에 끌려다니다 돌아와 “그래서 북이 독재국가 틀을 못 벗는 것”이라 불평할 때도, 조성우 동지는 달랐습니다. 그는 북쪽의 부당한 요구에 맞서 “이렇게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못한다. 이렇게 하자!.”
라고 당당히 말해 행진코스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북에서도 그는 껄끄러운 남쪽 지도자였고, 남쪽에서는 더더욱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무시당하고, 겁내고, 구속되고, 추방당하고, 또다시 구속해도 되는 사람처럼 구박데가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자신의 말 마따나 조선 남과 북 어디에서도 대접받지 못한 채 되는 일 없는 일만 하다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증언합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살아낸,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호탕한 자유인이 아니라 <화통한 창조자> 였습니다.
나는 풍운아 조성우동지를 <만물은 공물이다>를 실현키위해 대동계를 훈련한 정여립(鄭汝立) 같다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큰 자유인 이었기에 그는 시집 내지않는 시인입니다. 그의 시는 성명서에
ㅡ통일은 길을 내는것이다. 길은 함께 가는것아다. 그리고 그길은 더 넓어지는 것이다.ㅡ로 쓰였습니다.
조성우 동지는 신경림시인이나 민예총 김용태와 바둑을 놓으면서도 그의 머리속에는 늘 사건과 사건이 말을 달립니다. 고려대에서 긴급조치 7호로 제적당하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15년 형을 덜컹받고, 그래서 쫒겨간 일본에서는 동학농민문화제를 열어 사고를 쳤고 돌아와 YWCA 위장결혼식사건 등등 준비했습니다
누가뭐래도 그의 생애 최고의 작품은 <범민족대회>입니다. 89년 세계인을 불러들이고 90년대초 온 언론의 촛점이 되고 남북정권이 협력과 비협력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였습니다. 중요힌것은 해방이후 통일문제로 전국민이 그렇게 몸살을 앓은적이 았었는가? 그것도 긍정적 희망을 갖고.
나는 범민족대회 집행위원장으로서 조성우 동지와 조용술목사님 뫼시고 베르린 남북해외 통일회담에 참석 주도하였습니다.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로 범민련 완성은 못하였으나 첫째 남과 북이 이산가족 발굴과 일리기하자 둘째 남북이 공동문화패를 만들어 해외동포사회에 갈라진틈을 메우자 셋째 남과북이 태평양전쟁을 비롯한 일본의 만행을 공동 조사 고발하자 이런 결의를 정부가 받아주었더라면 일본문제 청산에 큰 성과를 누렸으리라만 이론 민간단체에 성과에 훈당을 주기는커녕 국가조안법아하는 철퇴로 징역을 살렸습니다.
나는 증언 합니다. 이 모든알에 조성우동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아니 그가 없으면 안 될 일들 이었습니다.
국가보안법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김현교무 지선스님 김상근목사 함세웅신부 어른들을 앞세워 자주평화통알 종교인협의회를 만들어 통일운동의 갈래를 처서 만든 것이 자주평화통알 민족회의 입니다.
이곳이 그가 오래 노래를 불러 준비한 평화연구소와 함께 활동가 양성 저수지였습니다(이름 생략). 민화협, 6·15공동남측위, 겨레하나로 이어지는 모든 통일단체 실무일꾼을 여기에서 양성하여 배출하였습니다. 그의 땀이 안벤곳이 없습니다. 지금도 자주와 자유를 지향하는 모든 활동에서 그의 숨결을 디켜봅니다.
'나는 단군이다! 너도 단군이다!' 외친 조성우 동지여 당신이 있어서 우리모두 살아있는 보람 넘쳤고 당신과 함께 어깨걸고 자주의 행진을 맛보아 행복하였노라!
고맙습나다! 고맙습니다! 조성우 동지여!
추모사 성우형 1주기를 맞아
이승환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성우형, 사랑하고 존경했고, 때로는 미워하고 원망했고, 또 고맙고 미안했던 성우형.
갑작스러웠던 형의 소천 이후 이제는 형의 부재가 익숙해지고 있는 1주기를 맞았습니다. 지난 1년 새삼 우리는 상실이 무엇인지 느끼고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에 익숙해졌다 생각하다가도, 사람들과 모이거나 혹 술 한잔 걸치면 꼭 우리는 형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오늘 1주기에 형 후배의 한 사람으로 추모의 말을 준비하며 무엇을 얘기할까 고민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형에게 배운 것, 형이 나를 매료시키고 반 평생 넘는 세월을 형과 고락을 함께하게 했던 멋짐 넘치던 형의 말과 가르침에 대해 얘기하면 어떨까 합니다.
형이 말한 이야기 중 나를 감동시킨 첫 번째 말은 '분단하에 벼슬하지 않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술이 오른 불콰한 얼굴로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했던 그 말은 내가 인간 조성우를 사랑하게 만든 첫 번째 말, 우리끼리 하는 전문용어로 정말 멋진 구라였습니다. 하지만 형의 이 말은 사실 구라가 아니라 형과 우리 모두에게 용기와 결단을 촉구하는 정언명령과도 같은 것이었지요.
"분단에 맞서라, 우리 모든 운동은 분단과 맞서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런데 분단이라는 괴물과 맞서려면 네 평생을 걸 각오로 싸우라!"는 말이었습니다. 운동한다고 어디 가서 어설프게 폼잡지 말고, 제대로 운동을 하겠다면 분단체제 변혁을 위해 네 인생을 걸라는 강력한 결사였습니다.
지금은 기억도 가물거리는데 2002년 총선인가 형이 국회의원 출마를 결심했을 때, 우리들은 큰 주저없이 형의 출마에 찬성했고 나름 열심히 선거운동을 도왔습니다. 사실 이는 '분단 하에 벼슬 않겠다'는 형의 말과 배치되는 것이었지만, 우리는 형의 그 말이 구라였다거나, 의미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기꺼이 형 선거 준비에 힘을 보탰습니다.
분단과 맞서는 우리 싸움이 그 반세기도 전에 형이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 혹은 벼슬 제안을 받고서도 분단과의 투쟁을 위해 유혹을 거부했던 때와 세상이 달라졌다고 이해했습니다. 우리의 분단체제 변혁운동은 이제 골방에서 광장으로 그리고 운동과 권력의 경계를 넘어 전 방면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자각과 각오 때문이었지요.
결과적으로 형은 분단하에 벼슬 않고 끝내 운동과 광장에 서있다 소천하셨지만, 저는 지금도 형이 좀 더 다른 방시으로 형의 주문을 실현하는 길로 갔어도 좋았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형으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은 '역사 앞에 흘린 피와 땀은 결코 쓸모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얘기 할 때도 형은 멋짐이 폭발했지요. 이는 운동하면서 생활과 세월에 부대끼는 우리 자신을 다그치고 함께 하는 동료와 선후배를 북돋는 주문이었습니다. 운동이 너를 괴롭히고, 너의 인생과 생활이 너의 운동을 힘들게 할 때, 왜 우리가 운동을 지속해야 하는지, 운동에서 오는 보람만 보지 말고 고통도 기꺼이 감내해야 그게 운동이다는 것을 우리에게 한마디로 정리해 준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형이 유독 내게 꼭 하던 말이 있었지요. '운동은 늘 좌경하게 되고, 좌경 때문에 운동이 망한다'는 말.
이는 제가 한창 NL운동의 입장을 형에게 전도하려 할 때마다 형이 내게 했던 말이었습니다. 물론 이 얘기를 할 때마다 형은 '내가 말이야'라든가 '라떼는 짜식아' 혹은 일본에서의 경험을 들며 말했고, 그 반복이 지겨워 속으로는 '나도 아는데' 생각하며 흘려듣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형의 이 말은 성찰 없는 운동은 역사를 바꾸지 못한다는 매우 엄숙한 의미를 가진 언술이었고, 자신의 운동과 주장에 매몰되어 변화하는 현실에 둔해지거나, 되돌아보고 나아가는 데서 관성 혹은 익숙한 경로 의존성에 빠지지 말라는 엄숙한 반문이었습니다.
형 1주기 추모의 말을 정리하면서, 형이 했던 소위 그 '구라'들, 불콰하게 마시면 반복했던 말, 지겹게 들어 흘려버렸던 그 얘기들이 얼마나 뼈 때리는 말들이었는지 새삼 느낍니다.
오늘 형이 통일운동의 새 길을 개척하고, 평화운동의 씨앗을 뿌린 얘기도 몇 가지 하고 싶지만, 오늘은 형의 주옥같은 말대로, 분단에 맞서 흔들리지 않고, 늘 성찰하며, 내가 무엇이 되려 하기보다 밀알이 되는 마음으로 계속 살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선배였고 스승이었고, 공범이자 동지였던, 사랑하는 성우형!
형이 지겹게 했던 그 말들, 형의 그 뼈 때리는 가르침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형 없는 앞으로의 세월 동안 나도 후배들에게 그 말들 잘 전하겠습니다.
유가족 답례 인사
황순식(큰 사위)
오늘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100분은 넘지 않을까 했는데, 200분이 훌쩍 넘는 분들이 와 주신 것 같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집회나 행사에 모이는 분들을 보면서 '구더기처럼 모여든다'는 말씀을 몇 번 하셨는데 그 말씀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벌써 일년입니다. 가족들도 시간에 적응해 가고 있습니다. 저의 와이프, 큰딸은 한동안 생전 안하던 혼술도 하고 살도 빠지더니 괜찮아졌습니다.
장모님도 단전호흡과 새로운 취미생활도 하시고 늘 하시던 공부도 하시며 새로운 삶에 적응해가고 계십니다. 손주들과 자주 찾아뵈려 하는데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고 대선까지, 유언을 집행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뛰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다음 정권을 시민과 함께하는 개혁을 통해 성공한 정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대선 후 몇 달이 지나며 답답하고 힘이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장인께서 바라셨던 연합의 정치, 시민과 함께하는 사회대개혁 대전환의 꿈은 대선 후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시민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집권여당과 정치권의 시간으로 바뀐 것처럼 같았습니다.
하지만 1주년을 준비하면서 깊이 반성하며 각오를 다집니다. 어르신께서는 어떠한 꽉 막힌 상황 속에서도 뚫어낼 공간을 찾고, 그 결과에 대한 집착과 미련 없이 행동과 실천에 옮겨 오셨습니다.
"조성우라면, 장인 어른이라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행동을 하실까?" 지금 저의 화두입니다. 실망하지 않고, 의기소침하지 않고, 그와 같이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오늘 모이신 선배님들, 동지들과 장인어른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것을 넘어 "그라면 어떻게 할까?"를 함께 고민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큰 어르신을 다시 살리는 길이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와 주시고, 또 멀리서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계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고(故) 조성우 선생 약력
- 1950년 경북 상주 출생
- 1968년 대신고등학교 졸업
- 1968년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입학
- 1975년 긴급조치 7호 위반으로 고려대학교 제적
- 1975년 명동 카톨릭청년회 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 위반 구속, 3년 복역
- 1978년~1979년 민주청년운동협의회 의장
-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 15년 언도
- 1983년 일본으로 추방되었다가 87년 6월항쟁 이후 귀국
- 1988년 평화연구소 설립, 연구소장
- 1989~1990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조국통일위원장
-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준비위원회
- 1990년 베를린 남북 해외실무회담 관련 징역 1년 6월
- 1992년~1996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자주통일위원장
- 1996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조국통일위원장
- 1996년 바르샤바 남북회담 관련 징역 1년 6월
- 1998년~2000년 자주평화통일민족회의 상임의장
- 1998년~2000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집행위원장
- 2000년~2003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
- 2000년~2003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2003년~2013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 2003년 개천절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
- 2003년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상임대표
- 2003년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소 이사장
- 2005년~2024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현 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
- 2015년~겨레하나(현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이사장
- 2017년~주권자전국회의 상임공동대표
- 2021년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
- 2023~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 2024년~자주통일평화연대(전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
- 2024~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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